안녕하세요. 지수자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 수요일 첫 출근을 하면서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살고 있어요. 직전까지 초등학교 특수학급에 보조인력으로 출근하며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함께했는데요. 동시에 대학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취업 준비가 한창이었어요.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면서 과연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는 어디일까 간절히 구하며 지냈는데, 감사하게도 특수학급의 일과 제 전공을 살리면서 개발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지수자매가 애정하는 특수학급 친구와✨
올 해 교회 안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섬겨주시고 계신걸로 아는데, 섬김의 자리를 소개해주세요!
작년 한 해 쉬어갔던 믿음순에 순장으로 다시 복귀를 했고, 더함 믿음순의 운영과 새신자 소식을 전하러 운영위에도 참석하고 있어요. 아! 올해는 오랜만에 유오디아를 통해 <부엔 카미노>라는 연극을 올렸어요. 저는 2017년을 시작으로 유오디아에서 극작을 맡아 청년 창작극을 올리고 있답니다. 연극을 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감사한 자리에요. 이야기가 실현되는 무대며, 배우들이며, 스태프들이며 혼자 꾸리고 만들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다행히 우리 교회에는 10년 전부터 공연을 통해 하나님의 향기를 흘려보내는 ‘유오디아’문화 사역 팀이 존재하고 있었고, 저는 그 사이에 부르심을 받아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작가의 자리를 누리고 있어요. 아직 입봉도 못한 아마추어의 글을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유오디아 팀에게도,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해하며, 극작을 맡을 때마다 열심히 지혜를 구하며 극을 쓰고 있어요.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기를 써볼게요. 꼭 보러 와주세요!
정말 다양한 자리에 꾸준히 서있는게 멋진 것 같아요! 은혜에 자리에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서 있을 수 있는 지수자매만의 비결이 있나요?
비결이라니, 대단한 일도 아닌걸요. 한 해, 한 해 배워야할게 많아서 시작했던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일 뿐이에요. 사실, 가장 오래한 믿음순은 제가 많은 사람들을 이끌 용기가 없어 시작한 사역이었어요. 믿음순은 일대일이니까요. 그래도 역시 매번 새로운 사람과 관계 하는 일이라,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마다 제 성향과 편견을 깨뜨리고, 맡은 순원과 함께 믿음을 재정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버틸 힘과 여러 기쁨을 선물로 주셔서 이 자리에 계속 있게 되더라고요. 그 중 가장 큰 선물은 열매를 맺는 기쁨인데요. 순원들이 예배와 말씀을 잘 누리는 모습으로,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 공동체를 누리는 모습으로, 교회 사역에 참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누려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다양한 모습들 덕분에 이상한 벅참과 감사함으로 믿음순에서 더 잘 서있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과 순원 사이에 좋은 통로가 되어야지, 좀 더 열심히 해봐야지, 가끔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한답니다. 우리 공동체 사람들은 그런 저의 모습을 발견해주고, 사랑해주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여러 자리로 불러주고 함께해주는 동역자들이 있어서, 다양한 자리에서 사역을 경험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제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 되라고, 이 자리에 있도록 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신난 지수자매
[유오디아 특집]답게 유오디아 질문을 좀 해볼게요! 이번에 극작을 하셨던 ‘부엔 카미노’를 보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제작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요?
그 시기에 동역자에 대한 기도를 엄청 했었어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관계가 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관계가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관계까지도 주님께서 주관하시는구나.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여러 마음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중심으로 두고 있는 마음은 ‘하나님은 나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도록 관계를 주관하시는 분’이에요. 이 마음은 자연스럽게 나보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기도로 이끌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동역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나는 보지 못하는 내 옆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요. 순례길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딱 좋은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실제 저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 나중에 함께 걸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제 사심을 살짝 담아서 정하긴 했지만요. 열심히 지혜를 구하며 썼어요. 그래서 메시지는 맞는데, 극으로 표현된 이야기가 제 실력을 거쳐 미흡했을 수 있어서,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어요. 우리 곁에는 분명히, 이미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동역자가 있답니다.
'부엔까미노'가 끝나고 동생, 엄마와 -
지수자매에게도 그러한 동역자가 있나요? 개인에게 집중하게 하는 시대 속에서 동역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있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대답을 살짝 고민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확신할 수 있어요. <부엔 카미노>를 쓰면서 감사하게도 저의 곁을 지켜주고, 저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줬던 동역자가 많이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이 질문을 들으니, 이 마음을 표현하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넌 내 동역자야, 그래서 넌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오글거리지만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관계에서는 필요한 말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담백하게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